팔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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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기제

청조의 만주통일과 china(중국)
정복을 가능케 했던 정치제도이자 군사제도인 팔기제도와 팔기제도의 유지를 위한 토지정책인 기지제도에 대해 설명(explanation)했습니다.

그들의 독특한 몰이사냥이란 대개 다음과 같다. 즉, 미리 짐승을 몰아 넣을 장소를 정하여 놓고, 그곳에 황색기를 세운 뒤 총지휘자가 진을 형성한다. 여기서부터 남색기를 가진 부대가 선두에 서서 좌우로 갈라져 전진하여 짐승을 몰기 위하여 산을 둘러싸며 포위진을 친다. 이 포위진의 양익에 홍색기와 백색기를 세우고 지휘자가 각자의 부서를 지키게 한 후, 점차 진형을 좁혀 황색기가 있는 곳으로 몰아 넣는 방법인 것이다. 소정잡록에는 입관후에 있어서 청조의 몰이사냥 기사를 기록하여, 「가운데 황독을 세워 중군으로 하고 좌우 양익은 홍백 이독으로 나누어 표식했다. 양익의 끝에는 국어로 오도리라 하여 각각 남독을 세워서 표식하고 그들은 모두 중군의 절제를 들었다.」라 하고 청문감에는 「중군의 황독이 있는 곳을 위저(fere)라 하고 양익의 홍백 이독이 있는 곳을 위견(meiren)이라 하였다.」 또, 오도리는 uturi의 음역이며 단(dube)이라는 뜻이다. fere는 ‘저’를 의미하고 meiren은 ‘견’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몰이사냥을 처음
할 때에는 중앙의 황독이 있는 곳에서 좌우로 향하여 줄을 지어 나아간다. 그 좌우의 선두를 uturi라 하며 그들은 남기를 가지고 있따 남기가 두 개 있는 것은 수렵구역에서 멀리서 포위하여 환진을 만들 경우, 이 uturi가 양쪽에서 합하여 환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이때를 신호로 점차 륜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1. 팔기제의 기원
Ⅲ. 팔기제의 성립

이와 같이 몰이사냥의 형식이 그대로 그들의 공성 전술에 응…(생략)
용되었다. 즉 포위하는 산 대신에 성이 그 대상으로 되는 것이다. 환언하면 짐승을 잡는 대신 인간을 포획하는 조직으로 된 것이 팔기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몰이사냥은 사냥을 위한 것임과 동시에 전투훈련이기도 하였다.
여진인들의 청조 입관전 후금국이라 칭하기 이전의 만주국은 몇 개의 aiman(부족)으로 성립된 것이었다. 그들의 사회조직인 gasan·aiman이라는 것이 이른바 팔기제에 의해서 하나의 통일체로 형성되는 것이다. 팔기제는 여진사회의 고래로 부터의 수렵형식에서 나온 조직인 것이다. 여진인들은 행사출렵에 의하여 녀자·인구노비·가축·재물을 약탈하는 것이 당시의 사회생활을 영위함에 있어서 중요하고도 불가결한 일이었다.
이 사냥은 많은 사람의 공동작업을 필요로 하였으며 그 주최자는 상당한 권력계급에 한정되었을 것이고 지휘자인 ejen에는 수렵에 능숙한 노련한 경험자가 뽑혔을 것임이 틀림없다. ejen은 같은 혈족 혹은 부락에서 인망 있는 사람이며 또한 다년간의 숙련에 의해 원활하게 공동작업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또, 수렵에 있어서는 지도자, 사수, 몰잇군이라는 역할이 분담되어 있었다. 실록에는 gasan(향촌)에 있어서 몰이사냥의 형식은 기록이 없지만 지휘자에는 gasan의 장이, 사수는 gasan에서 용감한 자가 몰잇군의 장은 falga(최소의 취락 형태)의 장이 몰잇군은 jusen(예농)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aiman(부족)의 경우에 있어서는 대규모로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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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설명

청조의 만주통일과 중국정복을 가능케 했던 정치제도이자 군사제도인 팔기제도와 팔기제도의 유지를 위한 토지정책인 기지제도에 대해 설명했습니다.팔기제 , 팔기제인문사회레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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